영어만 잘하는 사람은 매력없습니다.

2024. 11. 11. 21:14개발자의 영어

영어를 '잘'하는 것은 1순위가 아니다.

"나는 이것도 할 줄 알고 이것도 할 줄 알아, 근데 영어 할 수 있어"

가 되었을 때 영어가 의미가 있다.

"나는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근데 영어 할 수 있어"

가 되면, 큰 매력이 없다.

 

내가 과거 통번역 아르바이트를 위해 매일 방문하는 회사의 고객사는 전 세계인이 알만한, 누구나 선망하는 대형 IT 회사다. ‘A사'라고 칭하자. A사의 직원 중 한국인이 한 명 있는데, 그의 영어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영어 문장을 읽어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문장을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문장의 동사 자리에 동사가 없다. 문장이 너무 장황하고 긴 것은 기본이고, 그의 문장은 어법에 맞지 않는 구조라, 나는 이메일을 받으면 번역기에 넣어 돌리고, 원문과 한글 번역본을 비교해가며 뜻을 이해하려 애써야 한다. 물론 내가 아직 이 업계의 용어에 익숙지 않아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탓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그의 영어 문법은 엉망이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A사의 엔지니어가 되었을까. 그리고 그 엉망인 영어로 피튀기는 글로벌회사에서 오랜기간 책임있는 직책을 맡고 있을까?  

 

사실 이 사람뿐 아니라, 지난 15년이 넘는 기간동안 한국계/외국계 회사 생활을 하면서 무수히 많은 각국의 개발자나 엔지니어며 여러 분야 직원들을 경험해 봤다. 그들 중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저 자기 업무 범위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글과 말로 표현할 정도의 영어면 충분하다. 결론은, 기업은 오직 영어만 잘하는 어설픈 전문가를 찾지 않는다. 언어만 잘해서 먹고살겠다면 전문 통번역가나 영어강사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어설픈 영어라도 자기 업무에 탁월해야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다. 본인의 스페셜티가 1순위고 영어는 그 다음이거나 더 어설퍼도 된다. 다시 말하지만, "영어만' 잘할 거면 영어 티칭 스킬을 배워 영어강사가 되거나, 아니면 영어 통번역을 전문적으로 해서 정말로 영어를 원어민급으로 잘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영어가 초등 때 잘 해두어야 할 가장 1순위의 덕목인 것처럼 말한다. 우리나라 아이들 모두 영어강사로 키울 건가?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 찾아내, 관련된 경험을 하고 관련 책을 읽고,
  • 처음 시작한 것을 끝까지 해내는 연습을 하고,
  • 지식의 전달 매개체인 글을 읽고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연습을 하는 것

이런 '코어 스킬'에 대한 연습이 영어 교육보다 훨씬 훨씬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코어 스킬을 연습을 하는 학원은 없다 (= 있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부모들은 그저 눈에 보이는 피상적인 스킬인, 영어와 수학에 목을 매는 것 같다.

그럼 이런 중요한 덕목의 연습은 어디서 가능한가?

학교와 가정이다.

학교는 내가 단순히 생각하는 코어 스킬들뿐 아니라 오히려 더 전인이고 도덕적이며 종합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인간 양성을 목표로 할 것이다.

당연하다.

대한민국 공교육의 목표와 커리큘럼을 만들기 위해 각 분야의 교육 전문가인 분들이 얼마나 열심히 머리를 맞대었을까?

하지만, 시간적 (진도 일정) 그리고 물리적(한 반 20명 이상의 학생 수) 한계로 인해 모든 학생들이 그 방향으로 제대로 가게 지도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이제 남은 것은 가정이다.

가정의 부모님은 각자 삶이 바빠 그리고 본인의 부모에게서 제대로 된 연습을 당해(?) 보지 못한 경우, 가정 내에서 아이들을 이끌어가기가 쉽지는 않다.

나도 그렇다.

회사 다녀와 아이 둘 먹이고 씻기고 잠깐 공부 이야기하고 나면 그냥 하루 끝난다.

잠시 내 숨 돌릴 시간 따위는 없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부모는) 아이의 하루 일과를 조정할 권한을 가진 사람이다.

학교를 마치고 나서 잠들기 전까지의 일과가 초등 때는 거의 부모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주말 시간도 부모가 컨트롤이 가능하다.

우리 집 둘째가 다녔던 유치원은 유치원 졸업 후 연계하여 가는 어학원이 있다.

그곳은 하루 영어 수업 시간이 3시간이다.

그것도 주 5일만 받아준다.

그리고 또 집에 가서 해야 할 영어숙제가 있다.

초1이 하루 3시간 주 5일 영어 학원에 마치고 영어 숙제까지 하면 도대체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는 거지??

영어를 하루에 세 시간을 공부하면, 이건 중고등학생보다 영어 공부 시간이 많은 거 아닌가??

다른 엄마들도 '하루 3시간이면 많네'라고 하면서, 아이가 안쓰럽다고 하면서, 또 어쩔 수 없다며 거기를 보낸다.

나는 많은 부모들이, 영어만 잘하는 아이보다는 영어도 잘하는 아이로 키웠으면 좋겠다.

물론 아이가 어학에 소질이 있어서 외국어 배우는 것을 아주 잘하고 또는 좋아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근데, 아이는 이과 성향인데 영어는 기본적으로 잘해야 하니 영어에 돈을 들이붓고 있거나 싫다는 아이를 잡고 있다면, 좀 놔줬으면 한다.

나 또한 이 블로그에 아이의 영어책 읽기에 대한 글을 올리고는 있지만, 이건 내 관심사가 영어라서 그런 것이지 아이에게 영어가 세상 제일 중요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지는 않다.

영어를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영어는 해야 한다.

그런데 우선순위를 조정하자는 말이다.

 

요약

영어만 잘하는 것은 매력이 없다. 시장에서 영어 스킬의 가치도 점점 떨어져간다 (AI의 등장).

자기 전문 분야를 잘하는 게 영어 스킬보다 100배는 가치를 인정받는다.

자기가 잘하는 것을 찾아나가고,

책을 읽어 자기 것으로 만들고,

포기하지 않는 연습을 하는 것

그걸 집에서 아이가 연습할 수 있는 방법을 부모가 찾아 주는 것이 훨씬 훨씬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어는 그 다음이다.